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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3 | 203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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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4 | 204 | 이로써 반란군은 합법적 명분까지 확보할 수 있었고,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결재 서명을 통해 반란은 겉보기에 합법성을 띠게 되었으며, 결국 "성공"에 이르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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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5 | 205 | === 진압군의 확전 주저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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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6 |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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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7 | 207 | == 사후 결과 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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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8 | 208 | === 진압군 측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처리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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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16 | 216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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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17 | 217 | 비달 파브르의 사망은 법적으로는 즉각적인 처벌로 간주되지 않았다. 그가 처벌받기 전에 이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. 그러나 새로운 민주정부가 구성된 이후, 법원은 그의 내란죄와 국가적 범죄에 대한 사후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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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18 | 218 | === 내란행위에 대한 승인여부 (부정)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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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6 | 12·13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이 본격적인 무력 충돌로 사태를 확전하지 못한 데에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이유들이 있었다. 무엇보다도 정치적 부담, 군 내부의 균열, 외부 위협, 그리고 시간에 대한 오판이 겹쳐 작용한 결과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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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7 | 219 | == 사후 결과 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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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8 | 220 | === 진압군 측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처리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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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09 | 221 | === 정권을 장악한 반란군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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